주체111(2022)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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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싶지 않은 고향

- 해외동포의 글 -

 

이제는 고향을 떠난지 반세기가 가까와오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송아지동무들과 함께 한강기슭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북악산에 올라 술래잡이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고향은 서울, 한강에서 2리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우리 집은 2칸짜리 작은 단층집이였는데 앞에는 3~4평되는 자그만한 뙈기밭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얼굴도 모르고 자라는 나를 잘 키워보겠다고 말못할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그러다가 내가 10살나던 해에 날 데리고 여기 해외로 이주했다.

내가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하든 나서자란 고향은 고향인가보다. 몸은 만리타향에 있어도 고향을 잊은적은 없다. 생업이 바쁜 속에서도 드문히나마 서울관련소식을 찾아보며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것이 하나의 취향으로 되였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 취향은 점점 희미해지고 이제는 남조선소식을 보고 듣는것조차 괴롭다.

한때는 서울소식을 들으면서 수십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살기가 좀 나아졌을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정치인과 언론들이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증대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들을 앞다투어 광고해댔으니까.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했다느니, 또 《중진국》에서 《선진국그룹》에 들어섰다느니 하는 화려한 자화자찬의 문구들이 언론지면들을 도배하고 TV와 인터네트를 보면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대도시들에 번쩍이는 호화건물들도 적지 않았다. 세상을 깊이 보는 혜안이 부족한 나로서는 내가 어릴 때의 서울이 아주 번화해진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허나 식견이 밭은 나에게도 의문스러운것은 있었다. 그렇게 발전한다면서 왜 사람들의 자살률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것이였다. 사실 남조선이 세계적으로 단연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는것이 있다면 다름아닌 자살이다. 대다수의 사회경제지표들이 오르고내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데 유독 자살률만은 그 어느 나라도 따라올수 없을 정도로 《부동의 1위》를 굳건히 고수해오고있는것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27명으로 세계평균 11명의 두배를 훨씬 넘고 그중에서도 로인들의 자살률은 59명으로서 평균 18명의 3배를 넘는 수치이다. 그러니 대체 어떤 나라가 남조선의 《자살왕국》지위를 넘볼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자살이란 극단한 불행과 절망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바로 남조선에 불행과 절망에 빠져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제일 많다는것이며 남조선사회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람살기 힘든 세상, 가장 비인간적이며 뒤떨어진 후진사회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국민소득이 늘어난다는데 사람들은 왜 행복해하지 않으며 정치권은 《선진국》타령에 여념없는데 주민들은 왜 삶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고있는가.

아마도 친구의 죽음이 아니라면 나는 아직까지도 그 대답을 찾지 못했을수도 있다.

몇년전 서울의 한 죽마고우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내가 어리숙하게도 남조선의 《발전상》을 부러워하자 천진한 아이를 타일러주듯 친구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겉으로 보이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자네가 서울에 다시 와서 살아보면 숨조차 쉬기 힘들어질것이다, 정치권이 광고하는 경제지표들은 백성들과 아무 상관도 없다, 오히려 《발전》의 그늘밑에서 더욱 쪼들려가는것이 백성들의 삶이다, 사는게 죽기보다 더 괴롭다.…

그것이 친구와의 마지막 통화라는것을 안것은 썩 후였다. 알고보니 그는 령락된 가게를 살려보겠다고 아득바득 애쓰다가 종당에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그것이 그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심연속에 밀어넣은것이였다.

충격속에 깨달은것은 남조선의 《발전》이니, 《번영》이니, 《선진국》이니 하는것은 한갖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지난 수십년간 남조선에서 무엇인가 늘어난것이 있다면 부자와 빈자의 차이이고 사회의 량극화뿐이다. 결국 남조선사회의 《발전》이라는것은 오로지 특권족속들만의 부귀영화를 위한것이다.

예로부터 지주가 하나이면 세동네가 망한다고 하였다. 《사회적발전》과 《경제적풍요》의 간판아래 특권층의 재부만 산더미처럼 커졌으니 그대신 백성들의 삶이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드는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그러니 사람들이 갈 곳이 어디이겠는가. 죽음의 나락밖에 더 없을것이다. 나의 친구도 그렇게 자살의 낭떠러지로 떠밀려갔을것이다.

이렇듯 사람못살 생지옥을 고향이라고 추억하는것도 참 괴로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가고싶지 않은 고향이다.

수림 – 해외동포 –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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