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침출근길에서 있은 일이다.
려명소학교옆을 지나가던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공부시간 늦겠다. 할머니가 들어다줄게 책가방을 벗어라.》
《싫어요. 내가 메고갈래요.》
《원 고집두, 이 할머니가 들어다준대두.》
할머니의 지청구를 듣는둥마는둥 하며 달랑달랑 책가방을 메고 앞서걷는 소녀애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학교정문앞에서 소녀애는 학급동무들을 알아보고 서로 반기며 손목들을 잡고가는데 그들의 등에서는 색갈고운 《소나무》책가방들이 마치도 춤추는것만 같았다.
귀여운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의 뇌리에는 불현듯 언제인가 《로동신문》에서 본 한편의 기사가 떠올랐다.
어느 한 국제기구가 분쟁지역 어린이들이 당하는 참변을 《책가방묘비》로 명명하고 형상한 특이한 예술작품을 전시한 내용을 적은 글이였다.
작품은 세계적으로 분쟁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어린이들을 상징한 3 758개의 파란색책가방들을 풀밭에 세워 만든것이였다. 가지런히 놓인 책가방들은 신통히도 묘비를 련상케 하였고 그 하나하나의 책가방들은 그야말로 분쟁의 희생물로 된 어린이들을 상징하였다.
한적한 풀밭에 쓸쓸하게 놓인 묘비 아닌 《묘비》들,
그 《책가방묘비》들은 《반테로전》과 내전으로 사회적혼란이 일어나고있는 나라들에서 소중한 어린 꿈도 꽃피워보지 못하고 생죽음을 강요당하는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에 대한 련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지금 이 시각도 총포소리가 울부짖는 분쟁지역들에서 학교는 테로의 표적으로 되여 어린이들이 항시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있다. 그나마 학교까지 페쇄되여 수많은 어린이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빼앗기고 배움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어 배움의 책가방대신 피난의 보따리를 안고 질병과 굶주림속에 정처없는 류랑의 길에 오르는 어린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태여나 응당 누려야 할 배움의 권리와 삶의 행복대신에 언제 죽을지 모를 불안과 공포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분쟁지역 어린이들의 눈물겨운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다.
그러나 우리 공화국에서는 빛갈고운 《소나무》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어디서나 볼수 있지 않는가.
오늘 아침에도 집집에서는 부모들이 등교길에 오르는 귀여운 자식들에게 《민들레》학습장이 들어있는 《소나무》책가방을 메워주며 공부를 잘하라고 당부하였으리라. 아이들이 멘 소중한 책가방에 깃들어있는 가슴뜨거운 사연을 되새겨보며 또다시 눈시울을 적시였으리라.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처럼 학교갈 나이가 되면 누구나 돈 한푼 내지 않고 학교에 가고 학용품과 책가방을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그런 나라는 세상에 없다.
온 세계가 보건위기의 대동란속에 몸부림치던 어려운 나날에도 공화국에서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새 교복과 신발, 학용품과 책가방이 공급되는 감동깊은 화폭들이 펼쳐졌다.
하기에 귀여운 자식들이 나라에서 마련해준 새 교복차림에 책가방을 메고 발걸음도 씩씩하게 등교길에 오를 때마다 우리 인민들은 사회주의조국의 귀중함과 고마움에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것 아닌가.
춤추는 책가방과 《책가방묘비》.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나의 귀전에 손녀애를 향해 하는 할머니의 말이 들려왔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를 잘 해라.》
처녀애들은 손을 저으며 더욱 신이 나서 달려가는데 잔등에서 달랑달랑 춤추는 책가방도 화답하는것만 같았다.
멀어져가는 그 춤추는 책가방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느끼게 되였다.
나서자란 곳은 있어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손길이 없으면 배움의 꿈은 고사하고 귀중한 생명도 잃게 된다는것을, 마음껏 배우고 희망을 꽃피우는 내 나라 사회주의가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는것을.
고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