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강국건설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한 성스러운 애국위업이며 조국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떨쳐나 한몸바쳐야 할 전인민적인 투쟁입니다.》
지난 일요일 학생신발공장건설장에 지원나갔을 때였다. 우리들중에는 20대초반의 청년들도 있었고 한두해 있으면 년로보장을 받을 사람도 있었다.
건설장에 도착한 우리는 작업을 책임지고 나온 리청준동지의 과업을 받고 여러개의 조로 갈라져 일을 시작했다. 나도 어느한 조에 배속되여 성수가 나서 일을 해나갔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젊은 동무들이 이만한 작업량은 우리끼리도 할수 있으니 년장자들은 쉬염쉬염 일하면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달라며 작업공구들을 뺏다싶이 하는것이였다. 좀 있다가 공구를 다시 잡으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작업장에만 나오면 젊은 동무들은 이렇게 《성화》를 먹이였는데 그날따라 더한것같았다. 선배들을 존경하고 아끼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신발공장건설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려는 우리들의 심정을 몰라주는것이 아쉬웠다.
할수없이 나는 《휴식》하면서 다른 작업조에도 가보았지만 실태는 비슷했다. 이때 누군가가 우리 년장자들끼리 작업조를 따로 뭇자는것을 제기했다. 젊은 동무들에게 미안한 감도 주지 않으면서 우린 우리대로 땀을 흘릴수 있을것같기에 모두의 공감을 받았다. 50살이상으로 무어진 작업조때문에 인원할당과 작업구간을 다시 정하는데는 시간이 얼마 안걸렸다.
시간을 많이 뺏은것은 우리 조의 《막내》선출때문이였다. 복잡한 작업장이라 조에서 한사람은 꼭 로동안전원역할을 해야겠는데 그 일을 제일 어린 사람이 해야 된다고 결정되였지만 누구나가 그 일은 《휴식》이나 다를바 없다며 회피하는것이였다.
한달 먼저 장가를 갔으니 자네보다 형님이다, 사업년한이 더 많은 내가 어떻게 막내가 되겠느냐, 50kg짜리 마대도 통채로 드는데 막내란 어울리지 않는다 등 롱절반, 진담절반으로 《막내》자리를 서로서로 떠넘기는 그 광경에 우리모두가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나중에는 청준동지가 할수 없이 자기가 《막내》가 되여주겠다고 나서는것이였다. 하여 책임자가 새로 조직된 작업조의 《막내》가 되여 오후작업을 하게 되였다.
우리는 누구나 할것없이 부글부글 들끓는 건설장에 걸맞는 일솜씨로 맡은 일을 걸싸게 해제껴나갔는데 그중에서도 스스로 《막내》가 된 책임자동지는 짬시간에 작업전반까지 돌보느라 오히려 더 많은 땀을 흘리였다.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성실하고 열정넘친 모습들이였다.
우리가 젊은이들보다 쉬운 일을 하고 좀 휴식한다고 탓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조국의 부강번영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려는 깨끗한 량심이 어렵고 힘든 일에 젊은이들과 꼭같이 뛰여들게 하였고 년장자라는 《특권》이 허용되면 젊은 동무들의 짐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한결같이 혈기왕성함을 뽐내고싶어했고 《막내》가 되길 싫어했던것이리라.
참으로 우리 집단의 화목함과 깨끗한 마음들을 읽어볼수 있게 하는 잊을수 없는 모습들이였다. 바로 그 마음들이 합쳐지고 합쳐져 작업조가 새로 만들어지고 책임자를 《막내》로 되게 한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 동무들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날은 나이에는 많고적음이 있어도 애국심에는 크고작음이 없음을 더 잘 알게 한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중앙정보통신국 부원 최동식